"한국은행, 하는 일이 뭐냐"…따가운 시선에도 당당한 이유 [김익환의 BOK워치]

입력 2021-08-03 07:00   수정 2021-08-03 10:01

"한국은행 하는 일이 그렇게 많나요. 임직원 숫자가 상당하네요."

지난해 말 한은 임직원은 2458명에 달한다. 예산·세제를 비롯해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인력(2019년 말 기준 1092명)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한은 임직원 수에 의아해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정책을 짜내려고 밤샘하는 일이 잦은 일부 공무원들은 특히 그렇다. 이들 눈에는 서울에서 출퇴근하고 야근도 드문 '한은맨'이 한가해 보이는 듯하다.

한은은 표면적으로 기준금리 결정·화폐발행·외환·지급결제 업무 등을 관할한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주요 업무는 보고서 작성이다. 경제현안 분석 역량과 보고서 품질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크다. "하는 일이 뭐냐"는 따가운 시선에도 당당한 이유다.

하지만 보고서 가운데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전체 10%대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공개되는 보고서도 민감한 현안을 쏙 뺀 '맹탕 보고서'인 경우가 많다. 지난달 발표된 보고서를 봐도 그렇다. '최근 인플레이션 논쟁의 이론적 배경과 우리 경제 내 현실화 가능성 점검', '주택가격 변동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비대칭성 분석', '코로나19의 상흔' 등이 지난달 나왔다. 전세계 논문을 주석과 곳곳의 통계를 근거로 깔고 경제학계의 첨단 실증분석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 짜임새있는 보고서들이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같이 허망하다. '앞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수 있다'라거나 '주택가격이 내려가면 실물경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고용시장에 상흔을 남긴다'는 등 힘 빠지는 결론으로 보고서의 매듭을 짓고 있다.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최저임금, 부동산 정책 등의 현안은 한 문장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애써 비껴가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저자들에게 추경, 최저임금, 부동산 정책 등이 미치는 경제적 파장에 대해 물어보면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모르겠다"고 답한다.

한은이 현안에 눈감은 채 순수경제학을 추구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정책당국이 아니라 '상아탑'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경제학계마저도 요즘에는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안·정책 분석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학계의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쏟아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맹탕 보고서가 쏟아지는 것은 '한은의 공식 메시지는 총재 입에서만 나간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시장에 혼선된 메시지를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이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은의 보수적 조직문화도 맹탕 보고서를 양산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자칫 "이상한 걸 쓴다"거나 "전문 영역도 아니면서 잘난 척한다"는 내부 비판에 몸을 사리는 직원들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평판이 훼손되면 그만큼 승진길은 좁아진다. 국장, 부장, 팀장이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내용을 손질하는 경우도 많다. 난도질을 피하려고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자기검열'을 하는 직원들도 적잖다고 한다.

한은은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로부터 조직문화 컨설팅을 받은 데 이어 경영혁신 컨설팅도 추진 중이다. 낡은 조직문화를 털어내고 손보려는 시도다. 평판에 몸을 사리는 이른바 ‘평판 신드롬’이 청산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주목받는 보고서를 작성하려는 시도가 늘고, 스타 이코노미스트가 배출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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